신민학회설립회 옛 주소에 대해 간단한 소개
신민학회설립회구지와 채화삼 유적지는 창사시 영만진 신민로 주가태자에 위치하여 서뽁이 악룩산을 인접하고 동쪽이 샹장을 마주하고 있다. 1918년 모택동,채화삼등 진보적 청년이 “동지를 집합해서 신환경을 창조한다”는 것을 위하여 신민학회를 세울 것을 발기한다. 동년 4월 14일에 예전에 살았던집 정방에서 설립대회를 세운다.
신민학회 처음의 의도는 “학술 혁신하고 품행을 격려하고 인심퐁속을 개량한다” 그후 “중국과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을 학회의 방침으로 확정된다. 신민 학회 중의 핵심 구성원이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십월 혁명을 대량 선전해서 후남라시아연구회를 세웠고 문와서사를 창립했고 창사사회주의청년단을 기획하고 조직했다. 동시에 1920년 중국공산당 창사 조기 조직을 창립했다. 1921년 모택동, 하숙형이 중국공산당 창사조긱을 대표해서 중공 “일대” 참가했다, 중국공산당의 창립하는데에 사상적, 이론적, 간부적으로의 준비를 했다. 신민학회가 중국의 사업과 운명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혁명역사에서 “건당선성”으로 알려져있다.
신민학회는회원이 모두78명이 있고 그중에는 조기중국 공산당원이 31명을 포함한다.위대한무산계급혁명가모택동,채화삼,하숙형,향경여,라학찬,장곤제,곽량,진창,채창등는 학회의 우수대표이다.
신민학회설립회옛주소는 1983년에 호남성인민정부에서 성급문물보호단위로 공포한다. 1987년에 원형대로 재설립한다. 지금까지 옛 주소 핵심 보호구역은 약 5000평방미터가 있다. 미술관에서 “신민학회 ,건당선성” 진열전람이 있어 많은 청소년과 대중이 혁명전통교육을 받는 중요한장소가 되고 인문경관과 자연경치를 일체로 된 애국주의 교육 본거지와 관광명소가 된다.